나는 45세의 마취과 제통전문 여의사이다.
지난해부터 노안이 시작되었다.
기존의 안경과 함께, 진료시에는 돋보기를 겸해야 하는 불편한 상황이 시작된 것이다.
더욱이 움직임이 많은 운동인 테니스를 하기에는 안경이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다.
10여년 전 안경을 벗어보려고 시도했다가 남편이 친구까지 동원하여 설득하는 바람에 마음을
접었었는데, 이번에는 남편이 생각보다 쉽게 포기했다.
‘라식수술이든 성형수술이든, 마흔 넘어서 하려고 마음먹은 아줌마를 막는 건 불가능’이라는
선배의 얘기를 듣고서는.
내가 경험한 라섹수술 경과일지.
1. 수술가능여부와 방법을 결정하는 몇 가지 검사 후, 라섹 수술에 관한 전반적인 설명을 들었다.
동공으로 가늠하는 눈의 나이가 많아 보인다는 얘기도 함께 들으니 서글펐다.
2. 수술일이다.
눈동자를 고정시키라는 계속된 주문과 함께, 코앞, 눈앞에서 바로 보이는 기구가 주는 공포감이 상당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건 내가 평소 갖고 있는 여러가지 두려움 때문인 것 같다.
수술 직 후 튀어나온 말.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네요.”
하지만, 수술실을 나서자 곧바로 멀리 입구의 현관문이 신기할 정도로 또렷이 보였다.
3. 다음날은 행복했다.
통증은 거의 못 느낄 정도이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안경을 찾아 헤맸었는데, 이젠 더 이상 더듬거릴 이유가 없었다.
눈을 뜬 순간 벽에 걸린 시계의 초침까지 선명하게 보이는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이다.
뭘 할까?
여지껏 선글라스를 구입하려면 렌즈를 바꿔야 하는 불편함 때문에 하나로만 버텨 왔다.
내가 나에게 선물해 주기로 했다.
백화점에 가니 쫘악~ 진열된 선글라스들을 아무거나 바로 쓸 수 있다는 사실에 무척 즐거웠다.
이것저것 고르고 껴보면서 어제의 공포는 이것으로 보상받았다고 생각했다.
4. 통증은 그 다음날부터 제대로 시작되었다.
오늘은 뭘 할까?
통증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전무하다.
물론 병원에서는 수술 후 2-3일을 눈감고 쉬라고 했지만, 체질상 그건 불가능했다.
좋아하는 노희경 작가의 작품 ‘그들이 사는 세상’을 가끔 실눈을 뜨고 보면서 들었다.
딸은 현빈 때문에 본다고 놀렸지만, 난 오히려 송혜교에 반했다.
‘내가 남자라면 그녀가 뭔 짓을 하여도 용서 해 주리라.’
5. 수술 후 3일째 되는 날. 통증이 아직 남아 있는 상태이다.
어쩔 수 없이 출근해야 되는 상황을 슬퍼하며. 편치 않는 하루를 보냈다.
6. 이후 일주일, 한 달 동안은 ‘아직까지는 잘했나?’ 싶었다.
평소의 노안이 조금 더 진행되면서 책을 보는데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원장님은 기다려 보라고 했지만, 당장이 불편해서 돋보기 구입했다. 하지만 몇 번 사용하지 않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저절로 좋아졌다.
조금만 참을 걸 괜히 돋보기를 샀나 싶다.
7. 6개월이 지난 지금.
노안도 거의 없는것 같다. 정말만족한다. 거울 앞에 서면 주름 하나하나가 눈에 쏙쏙 들어오는
슬픈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지만, 삼십년 이상을 껴 왔던 안경을 벗어버린 자유로움에 마냥 감사하기만 하다.
박효광 원장님께 감사를 드리며...
10년 전에 하지 않은 걸 후회한다.